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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용접 ‘자충수’ 된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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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중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9-1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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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용접 2018년과 같이 불체포특권 포기 의사를 밝히며 승부수를 띄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구속되며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친구이자 같은 검사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다음으로 감옥에 가게 된 ‘원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의 정치적 몰락으로 평가된다.
이날 새벽 영어의 몸이 된 권 의원이 지난달 김건희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맞서 던진 ‘2018년 어게인’ 승부수는 실패로 귀결됐다. 2018년 강원랜드 채용 청탁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을 때처럼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히고 체포동의안 가결을 통해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응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권 의원은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는 지난 11일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참여해 찬성 표기한 용지를 노출했다. 전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결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세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그를 구속했다.
12·3 불법계엄으로 몰락한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말로를 같이하게 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내란 특검에 의해 재구속됐고, 김 여사는 지난달 김건희 특검에 의해 구속됐다. 한 달여 뒤 권 의원도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권 의원은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을 거쳐 2009년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강원 강릉에서만 내리 5선을 한 강원 정치의 간판스타로 2020년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권 의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2021~2022년 20대 대선 국면에서 당 사무총장을 맡아 윤석열 후보를 발기부전치료제구매 지원했고, 정권 교체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아 윤석열 정부 초반 국정운영을 뒷받침했다. 오래전부터 윤 전 대통령과 친구였던 권 의원에게 ‘원조 윤핵관’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권 의원의 구속 사유가 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역설적으로 윤석열 정부 실세로 자리매김한 권 의원의 위상을 보여준다. 통일교 측이 윤석열 정부를 향한 청탁의 유력한 경로로 권 의원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권 의원은 지난해 국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한동훈 대표·추경호 원내대표 체제가 붕괴하자 원내대표를 맡아 비상대책위원장인 권영세 의원과 함께 ‘쌍권’ 지도부로 당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 5월 대선 승리를 명분으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교체하는 작업을 권영세 의원과 함께 무리하게 시도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대선 이후 당내에서 인적 청산 대상으로 지목되는 등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권 의원의 정치적 재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구속 상태로 맞이할 1심 재판에 이어 향후 2·3심 재판까지 지난한 사법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2028년 열릴 차기 총선 전까지 혐의를 떨쳐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 의원은 강원랜드 채용 청탁 사건 때처럼 최종 무죄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 권 의원은 구속 직후 페이스북에 아무리 저를 탄압하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무죄를 받아내겠다며 문재인 정권도 저를 쓰러트리지 못한 것처럼, 이재명 정권도 저를 쓰러트리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한국에 왔던 고려인이 3년여 만에 사망했다. 장례는 한국에 먼저 정착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이웃들이 치러줬다.
17일 광주 광산구 광주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지난 16일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으로 피난을 왔던 고려인 장뾰토르(60)의 장례식을 치렀다.
뾰토르의 마지막 길은 함께 입국했던 조카 가족과 고려인마을 주민 10여 명이 함께했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살았던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인근 폴란드로 피신했다. 갈 곳이 없던 그는 고려인 탈출을 돕기 위해 항공권을 마련해 보내 준 광주고려인마을을 통해 그해 5월 한국에 입국했다.
낯선 한국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뾰토르는 입국 직후 지병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의 친인척은 40대 조카 가족이 유일했다.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했던 그는 결국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난 14일 한국 입국 3년 4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광주고려인마을은 그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뾰토르의 병원 치료비와 장례비를 후원금과 주민 모금을 통해 지원해 왔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뾰토르의 삶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 됐던 고려인 후손들이 ‘전쟁 난민’으로 또다시 떠돌아야 하는 아픈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한국으로 피난 온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광주고려인마을에는 2022년 항공권 지원을 받은 900여명의 고려인 난민이 터를 잡았다.
하지만 3년 넘게 전쟁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400여명 정도만 남았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전쟁이 끝나지 않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도 많다.
고려인들을 돕고 있는 이천영 목사는 대부분 원룸 등에서 생활하는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전쟁 장기화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면서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돕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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